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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노벨문학상 수상 16세기 터키의 살인사건,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by 김마리오 2024. 10. 3.

A. 그림은 정신이 보는 것을 눈의 즐거움을 위해 재현하는 것이다.

B. 눈이 세상에서 보는 것은 정신이 허락하는 만큼 그림에 반영 된다.

C. 따라서 아름다움이란 정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눈을 통해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오스만 제국의 꿈’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을 둘러싸고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전쟁을 다룬 내용입니다. 결국 오스만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1453년 그곳을 점령하고, 이스탄불로 그 이름을 바꾸어 제국의 수도로 삼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는 이제 이슬람 세력의 것이 됩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당대 최고의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6세기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쓰여진 터키 작가의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16세기, 이슬람식 세밀화를 그리던 이스탄불 궁정화가들에게 유럽에서 넘어온 르네상스 미술이 알려지게 됩니다. 원근법을 개발하고 난 뒤 사진과 같을 정도로 현실의 재현에 충실해 졌던 당대 유럽의 초상화를 본 이슬람 최고 궁정화가 ‘에니시테’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술탄을 설득해, 유럽식 화풍의 이슬람 책을 제작하게 됩니다. 애니시테는 가장 뛰어난 제자 3명을 이용해, 비밀리에 서양 화풍으로 술탄의 책을 그리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서양 화풍에 반대하는 누군가에 의한 화가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 ‘카라’는 술탄의 의뢰를 받아,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 사건에 뛰어듭니다.

 

이 소설의 차례를 보면 각 챕터마다 “내 이름은 OO”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각 챕터마다 서술자의 시점을 달리하며 소설이 진행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 금화 등 무생물의 시점에서도 서술을 하고 있는 점이 꽤 현대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또 어찌보면, 에니시테의 딸인, 절세미녀 ‘셰큐레’를 가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카라’의 연애 소설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살인자를 밝혀낸다는 점에서 추리소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요소가 섞여 있는 이 소설의 실제 주요 내용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 속에서 고뇌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오랜 갈등에 관한 묘사이며, 어느샌가 동양을 뛰어넘어버린 서양 문명에 대해 느끼는 동양인의 고백이 주된 내용입니다.

당대의 유럽과 이슬람에서 유행했던 회화를 비교해 보면, 누구라도 유럽의 그림을 훨씬 잘 그렸다고 느낄 것입니다. 중세 이후,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는 신이 아닌 인간 그 자체를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대유행을 했고, 어떻게 하면 가장 아름답게 인간을 그리느냐가 화가들의 최대 관심사 였으니까요. 그래서 (책의 표지에도 그려져 있지만) 동시대 이슬람 그림을 보면 굉장히 유치하고 엉성해 보입니다. 원근도 없고, 신의 모습을 차마 그릴 수 없기에 대신 그리게 된 기하학적 문양들로만 채워진 세밀화를 보면 이슬람 화가의 실력 마저 의심하게 되죠. 하지만 당대 이슬람 화가들도 유럽 화가들처럼 그릴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다만 다른 세계에 살았기에 유럽 작가들과는 다른 형태의 그림을 그렸던 것 뿐이죠. 그들에게 그림이란, ‘신의 이야기’와 ‘신이 그리라고 명한 것’을 늘 똑같은 형태로 그리는 것이지, 개별 인간이나 사물을 최대한 비슷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의 그림관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서서히 변하게 됩니다. 충격을 받을 정도로 아름다운 서양의 그림을 본 이슬람 화가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나도 이러한 그림을 그려 볼 것인가? 아니면 이건 내가 알 던 그림이 아닌 것이니, 원래 방식대로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겠죠? 발전된 신기술 맞닥뜨려을 때 그것을 배척하느냐, 받아 들이고 새로운 발전을 이루어 가느냐? 그 저항과 변화에 관해 이야기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것처럼, 처음엔 ‘피’와 죽음으로 변화에 저항을 하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이고 발전해 가는 것이 문명의 속성이 아닐까요? 아무리 막아보려고 해도,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결코 막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책은 크게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슬람 문명에 관심이 없다면 살면서 처음들어보는 단어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 탓에, 소설이 묘사하는 풍경조차 쉽게 상상이 되지 않고,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선 굉장히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소설인데다가 한권도 아니고 2권이나 되기때문에, 읽는데도 오래 걸려요. 하지만 늘, 좋은책이 읽기 어려운 법이죠.

 

https://blog.naver.com/hite_kim/223524242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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