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인생 책으로 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 과학자의 실패와 그가 남긴 어두운 유산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책입니다. 실존인물 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단지 물고기를 분류하는 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끝까지 고수했던 인물로 그려 집니다.
"숨어있는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몰두하고 관심을 기울이던 그 상냥했던 소년이, 어떻게 바로 그 숨어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을 기꺼이 말살하려는 남자된 것일까?"
조던은 어린 시절, 작은 생명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데 몰두하던 상냥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점차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조던은 물고기의 분류와 연구를 통해 명성을 쌓았고, 자신이 믿는 대로 세상을 '정리'하려는 시도를 평생 계속 해 왔습니다. 물고기를 분류하듯이 인간도 유전적 특성에 따라 분류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 것 입니다.
그는 우생학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조던은 우생학이 인간의 유전적 결함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수많은 사람들이 강제 불임수술을 당하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벌어집다. 그는 인간을 분류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셈 입니다.
룰루 밀러는 이 책에서 조던의 이러한 신념을 비판하며, 우리가 세상에 질서를 강제로 부여하려 할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경고합니다. 조던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오류를 범했지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 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던이 평생을 바쳐 연구했던 물고기, 즉 '어류'라는 분류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어류는 단일한 분류학적 그룹이 아니며, 우리가 알고 있던 어류는 분류학, 생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음이 드러납니다. 즉 책 제목 그대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거죠.. 그러니까, 조던이 평생 매달렸던 것, 그가 중간에 무너진 후에도 철저하게 다시 쌓아 올리려 했던 것은 결국 '없었던 것'이었던 셈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과학적 지식 뿐만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함께 줍니다. 처음엔 올바른 방향으로 시작했더라도, 그 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조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배우게 됩니다. 결국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https://blog.naver.com/hite_kim/22360570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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